마이 블랙 미니드레스(2011) - 나이 꽉찬 미숙아들의 어설픈 성장기(?) by 곰냥이

감독: 허인무
주연: 윤은혜, 박한별, 차예련, 유인나



지난 월요일 밤, 서울에 잠시 다니러 온 일본인 친구와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를 봤다.
(내 개인적으로) 혼자서라면 절대 돈 주고 보러 가지 않았을 스타일의 영화지만, 친구가 보고싶다고 해서 그냥 보게 됐다.
영화에 대한 내 기대치는 바닥이었고, 영화는 나의 기대를 조금도 넘지 못했다.

사실, 영화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오던 20대는 찬란하지만, 몸뚱아리 하나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20대.
유예 상태에 있던 많은 것들이 큰 문제가 되어 눈앞에 던져지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미숙해서 헤매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현실.
가장 친한 친구는 최고의 라이벌이기도 하고, 최고의 안식처이기도 하며,
나를 해치는 존재이기도 하고, 나를 지켜주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친구가 잘 잘됐으면 좋겠지만 그건 결코 '나보다 더'이어서는 안 되고,
친구에겐 모든 걸 털어놓을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해 지는...
그런 20대의 이야기.

뭐 이런?

그런데 영화는 이 재미난 이야기를,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주연인 네 여배우(?)는 과연 늘씬하고 예쁘다. 어떤 스타일의 옷도 척척 소화해 내고, 상큼하고 귀엽다.
하지만!! 정말 그뿐. 영화 초반엔 연기가 어설퍼서 손발만이 아니라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첫 장면인 졸업식 장면부터 어찌나 어색하던지...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시각적 효과만 노렸을 뿐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네 배우가 모두 너무 예쁘다는 것부터 비현실적이다.
거기다가 늘상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머리 세팅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도,
클럽에서 몸을 흔들며 즐기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인 것처럼 그려지는 것도 너무 비현실적이라 공감하기가 어렵다.
'연극영화과'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의 설정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출신 학과마저 뭔가 '허영'의 상징인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예쁘고 몸매좋고 꾸미기 좋아하고, 노는 데만 관심 있는 애들이 무슨 치열한 고민을 하겠나...라는 느낌을 받게 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현실성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 같다. 혹은 아주 뛰어난 배우가...

하지만 이 영화가 실망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어디선가 본 듯한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되어서이다.
그 가운데 최고봉은 유민(윤은혜)이 이야기였다.
방송국 막내 작가가 된 유민은 메인 작가의 뒤치닥거리를 하게 되는데,
그 상황을 보니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가 미란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것과 오버랩되는 거다.
쌍둥이 아들을 돌보는 설정,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애증이 싹트는 것 등.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다.
여성의 성장 스토리라는 공통점이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설정은 겹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조금이라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면,
그래도 캐릭터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나름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는 대목 때문일 거다.
유민이와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영미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은 영화 전체 중에서 가장 섬세하게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유민을 가장 성장시킨 건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세 친구가 아니라 조금은 귀찮게 여겨진 고등학교 동창 영미였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는 수진(차예련)이의 상황도 나름 흥미로웠다.
딸 다 키워놨으니 미련도 없다는 듯, 이젠 정리할 수 있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하는 부모를 지켜보는 민희(유인나)의 상황도 아프면서 담담하게 잘 풀어냈다.

다만 영화 내내 모든 것이 조금씩 오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까웠다.
초반의 떠들썩함을 조금 줄이고 캐릭터 개개인의 상황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마치 20대만 각종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고민 없고, 문제 없는 인간이 누가 있겠나?
먹고 자고 싸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신생아기를 제외하면, 평생이 질풍노도. 언제나 사춘기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게 말해주자.
다 그런 거다.
그러니 나는 잘 해내고 있다. 좋은 날도 있을 거다.
그러면 심호흡 한 번 하고 힘 낼 수 있을 거다.
삶이 고달픈 모든 인생들 화이팅!

덧글

  • 율2 2011/05/30 23:19 # 삭제 답글

    진심공감 쩌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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